최근 60대 남성 한 분이 갑자기 왼쪽 얼굴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며 예림한의원을 찾았습니다. 상태를 살펴보니 왼쪽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아 눈물이 흘렀고, 입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더군요. 왼쪽 귀 주변 통증도 호소하셨고, 이마를 찡그려보시라고 했지만 왼쪽 이마에 주름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왼쪽 이마와 눈, 입 주변의 움직임이 확연히 약해진 상태입니다. 흔히 ‘벨마비’라고 부르는 ‘말초성 안면마비’에서 볼 수 있는 증상이죠.
안산 예림한의원 신유수 원장입니다. 이번 글은 위의 사례를 바탕으로 안면마비에 대한 내용을 다뤄볼 건데요. 요즘 일교차가 커서 그런지 안면마비 환자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환자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진맥을 하고 있는 안산 예림한의원 신유수 원장
안면마비 진료, 중추성인지 말초성인지 살피는 게 먼저
옛말에 “찬 데서 자면 입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들어보셨죠? 안면마비를 말하는 건데, 한의학에서는 ‘구안와사’나 ‘와사풍’이라고 하죠.
지난번에 쓴 안면마비 글에서 다룬 것처럼 안면마비를 진료할 때는 먼저 이 증상이 ‘중추성 안면마비’인지 ‘말초성 안면마비’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뇌경색이나 뇌출혈과 관련된 중추성 안면마비는 주로 얼굴 아래쪽과 입 주변의 힘이 약해지고, 이마 주름이나 눈 감기는 비교적 유지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중추성 안면마비가 의심된다면 바로 응급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물론 이마 주름만으로 “뇌에는 문제가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얼굴 마비와 함께 한쪽 팔이나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감각이 둔해지는 증상, 말이 어눌해지거나 걷기 어려운 증상 등도 반드시 확인해야 하죠. 갑작스러운 심한 두통과 시야 이상, 복시, 의식 변화가 동반될 때도 즉시 응급 진료가 필요합니다.
위에 언급한 환자의 경우 저의 진단도, 다른 의료기관의 진단도 모두 벨마비, 즉 말초성 안면마비였습니다. 벨마비는 비교적 회복 경과가 좋은 편으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 마비된 정도와 치료 시작 시기 등에 따라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초기 평가와 필요한 치료를 미루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면마비 진료할 때 건강 상태를 중요하게 살피는 이유
말초성 안면마비가 의심될 때는 귀 주변에 수포가 생기지 않았는지, 청력저하와 이명, 어지럼증이 함께 나타나는지도 확인합니다. 얼굴의 움직임만 보면 비슷해 보이더라도 벨마비와 람세이헌트증후군처럼 원인과 초기 대응이 다른 질환을 구분해야 하니까요.
이처럼 응급성과 원인을 감별하는 데 필요한 증상을 먼저 확인한 뒤에는 문진의 범위를 발병 전후의 몸 상태로 넓혀갑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증상이 시작됐는지, 당시 피로와 스트레스는 심하지 않았는지, 잠과 소화 상태는 어땠는지, 기존 질환이나 가족력은 없는지를 차례로 살펴보는 것이죠.
왜 이런 내용까지 중요하게 확인할까요? 한의학에서는 같은 질환이라도 어떤 몸 상태에서 증상이 나타났는지에 따라 치료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안면마비라는 진단명이 같아도 동반 증상과 체력, 발병 과정은 환자마다 상당히 다릅니다. 기본 처방이 같더라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약재를 가감하고 용량을 조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그래서 저는 진료가 ‘환자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다시 환자의 이야기로 돌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환자에게도 안면마비가 나타나기 전날 무엇을 했는지부터 최근의 피로와 수면 상태까지 차례로 물었고, 그 과정에서 발병 전 몸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습니다.

△ 말초성 안면마비의 특징
안면마비, 찬 바닥에서 잔 게 원인?
발병 전 상황을 묻자 환자분은 ‘최근 신경 쓸 일이 많아 상당히 피곤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술을 마시고 찬 바닥에 누워 잠들었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얼굴이 이상했다는 겁니다.
제가 앞에서 ‘찬 데서 자면 입 돌아간다’는 옛말이 있다고 한 것처럼 환자분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하더군요.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한 번의 상황만으로 벨마비의 직접적인 원인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벨마비의 발병 원인은 그렇게 단순명료하지 않거든요.
제가 발병 전 상황을 자세히 묻는 것은 “찬 바람을 맞아서 생겼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증상이 시작된 시점과 당시의 컨디션, 기존 질환과 복용 중인 약, 수면과 소화 상태를 함께 놓고 봐야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서입니다.
서양의학이 안면신경에 생긴 염증과 부종, 관련 질환을 구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한의학에서는 여기에 ‘왜 이 시기에 몸의 균형이 흔들렸는가’라는 질문을 하나 더 보태거든요.
안면마비 발병 전 몸 상태의 한의학적 해석
한의학에서는 안면마비를 구안와사 또는 와사풍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몸을 지키는 ‘정기(正氣)’가 약해진 상태에서 ‘풍사’나 ‘한사’ 등의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으면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하죠.
여기서 정기는 흔히 ‘면역력’과 비슷한 의미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범위가 넓은 개념입니다. 몸이 외부 자극에 대응하고 내부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을 뜻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정기가 허한 상태인지를 판단할 때는 피로와 수면, 소화 상태, 냉열의 편차와 전반적인 체력 등을 함께 살핍니다.
같은 안면마비라도 발병 전 과로가 심했던 분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분, 소화가 떨어지고 기력이 약해진 분의 몸 상태는 서로 다릅니다. 이번 환자에게서 피로와 스트레스, 음주와 수면 환경을 자세히 확인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얼굴의 마비 정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몸이 보내고 있던 변화까지 진료의 단서로 삼는 것이죠.

△ 침을 놓고 있는 안산 예림한의원 신유수 원장
안면마비의 한의학적 치료
한의원에서 안면마비 환자를 진료할 때는 앞서 확인한 증상과 몸 상태를 바탕으로 침과 전기침, 부항, 약침, 한약 등 가운데 필요한 치료를 선택합니다.
침과 전기침은 증상이 나타난 얼굴 부위와 전신의 혈자리를 함께 고려해 적용하는데요. 목과 어깨의 긴장이 뚜렷하다면 부항치료를 더할 수 있고, 약침은 과거의 알레르기 반응과 기저질환, 현재 상태를 확인한 뒤 사용 여부와 종류를 정하죠.
한약도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처방하는 건 아닙니다. 수면과 피로, 소화 상태와 냉열의 편차, 현재 복용 중인 약까지 함께 살핀 뒤 약재의 구성과 용량을 조절하게 되죠.
결국 안면마비라는 진단명이 같아도 치료 구성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회복 속도와 정도 역시 원인과 처음 마비된 정도, 치료를 시작한 시기와 환자의 몸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고요.
안면마비에 대한 이번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갑자기 한쪽 얼굴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먼저 중추성 질환의 위험 신호가 없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초기 검사와 치료를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이후 얼굴의 움직임과 동반 증상, 증상이 나타나기 전의 몸 상태까지 함께 살펴야 현재의 안면마비를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안산 중앙동 예림한의원 신유수 원장이었습니다.
※ 이 글은 실제 진료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했으며, 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환자를 특정할 수 있는 일부 정보는 변경했습니다. 개인의 증상과 원인, 치료 방법과 경과는 다를 수 있으며 정확한 진단과 치료는 의료인의 진료를 통해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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